티스토리 뷰
커크본즈 책 내기로 확정한 김에 그간 썼던 것들 모아봄
저는 원래 그림러고 글 쓰는건 재능도 없고 솔직히 말하자면 그림러주제에 뭔가를 안 그리고 글로 썼다는게 좀 부끄러워서 여태까지는 글 쓴걸 닉네임 걸고 공개했던 적이 거의 없었는데.. 시간 오래 지나서 보니 이런 것도 했었지 싶고 덕질한 흔적들인데 한군데 모아두면 피규어 모아놓은 것마냥 좀 뿌듯하지 않을까 싶어서 백업해봅니다
인생은 모르는 것이다. 눈앞의 남자를 보며 커크는 생각했다. 예전에 온갖 모욕과 무안을 덧붙여 차버린 남자를 파트너로 다시 만나게 될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
수인으로서의 의무는 잘 알고있었고 딱히 거절할 마음도 없었다. 파트너가 이렇지만 않았어도 맹세코 그랬을거다. 커크는 전화기를 손에 든 채 왔다갔다하며 초조하게 상대방이 전화를 받길 기다렸다. 그동안 이름도 모를 남자는 쇼파에 불량하게 기대앉아 커크를 뚱한표정으로 보고있었다.
"에이전트한테 전화하는거면 받을 거라고 기대 안하는게 좋을텐데. 아무튼 난 어떤 방을 쓰면 되지?" 남자가 옆의 짐가방을 집어들며 일어나 던진 말에 커크는 움찔했다. 남자의 어조는 얼굴만큼 평온했고 딱히 우려했던 감정따윈 흔적도 찾을수 없었다. 커크는 떨떠름하게 손님방을 가리켰다. 예쁜 여자수인을 기대하며 어제 하루종일 청소해 놓은 방이었다. 남자는 방쪽을 힐끗 보고 인사도 없이 방으로 성큼성큼 사라졌다.
커크는 저 남자의 이름을 잘 몰랐다. 그냥 자기가 사람들 앞에서 조롱하고 몰아붙일때 붙였던 별명만 기억했다. 뼈다귀처럼 볼품없다고 본즈라고 불렀다. 커크에게 그 남자는 그냥 본즈였다. 커크는 서류를 집어들었다. 레너드 맥코이. 이름을 처음 알았다. 6년전엔 알려고도 해본적없는 이름이었다.
***
맥코이는 샐러드볼을 쥔 채로 풀떼기를 으적으적 씹다가 인상을 썼다. 동거인이 뒤에서 눈치를 살피며 살그머니 사라지는걸 느꼈기 때문이다. 이유는 알았지만 계속 저러는건 피곤했다. 맥코이는 서른 넷이었고 가임기가 얼마 남지도 않은 상황에서 기왕 잠시 동거하다 헤어질 파트너와 피곤하게 지내고 싶지도 않았다. 어차피 이번 파트너와도 텄으니 최소유지기간인 6주 이후에는 또다시 새로운 파트너를 지정받아야 할테지만 6주간이나 이런 상태로 지낼걸 생각하니 머리가 아팠다. 맥코이는 샐러드볼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임스 커크. 잠시 얘기 좀 해."
커크가 꽁무니에 불이 붙은 개 같은 표정으로 본즈를 쳐다봤다. 맥코이는 그러거나 말거나 미간을 펴려고 노력하며 턱짓으로 그가 앉아있던 쇼파 맞은편을 가리켰다. 맥코이는 벌써부터 피곤했지만 서른넷은 사람을 대하는데 노회해지는 나이다. 그는 눈앞의 사자수인이 무슨말을 들어야 마음이 편해질지 잘 알고 있었고 6주간의 평온한 생활을 위해 기꺼이 그 말을 해줄 용의도 있었다.
"어...우리...아직 통성명..."
"통성명은 개뿔. 내가 널 기억 못할까? 제임스 커크."
맥코이의 말을 들은 커크의 얼굴색이 변했다. 역시 그 일을 아직 기억하는걸로 모자라서 나한테 아직도 미련이 남아있는게 확실해. 커크의 표정을 보고 맥코이는 한숨을 쉬었다.
"무슨 생각 하는지는 알겠는데 그런거 아니니 긴장 풀고 좀 들어. 일단 말해두는데, 그때 일 난 다 잊었고 새삼스럽게 유감도 없어. 그러니까 그렇게 죄 지은 사람처럼 피해다니지좀 마. 둘째로 아마 그쪽은 아직도 내가 그쪽한테 미련이 남았다고 생각해서 몸사리는 모양인데 아니니까 걱정마. 세번째로 나도 그쪽하고는 무리라는데 동의해. 그러니까 우리 6주간 서로 피곤하지않게 잘 지내다 헤어지는걸 목표로 하자고."
커크는 맥코이의 말을 듣고 어리벙벙한 기분이 되었다. 맥코이의 말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쿨했다. 6년전 자기앞에서 음식물찌꺼기를 뒤집어쓴채 자길 눈물이 떨어질듯한 얼굴로 보던 사람과 동일인물인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그러나 맥코이의 표정은 넌덜머리난다는 거친 얼굴이었고 말투는 냉소를 넘어 세상 만사에 대해 지긋지긋함이 배어나는 염세적인 것이었다. 커크는 슬그머니 눈치를 살피며 긴장을 풀었다.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았다.
"정식으로 인사하지. 레너드 맥코이. 당분간 잘 부탁해."
맥코이는 손도 안 내밀고 냉담하게 말했다. 커크는 조금 망설이다가 마른 입을 축이고 대답했다
"어, 반가워 본즈. 난...." 커크는 실수를 깨닫고 입을 다물었다. 그때를 회상시키는건 무엇이든간에 나빴다. 커크는 욕을 얻어먹을 각오를 했지만 맥코이는 한쪽 눈썹을 치켜뜨는가 싶더니 픽 웃었다.
"본즈? 그러고보니 그렇게 불렀었지."
"미안." 커크는 솔직하게 사과했다. 맥코이는 어깨를 으쓱했다. "별로 상관없어. 그렇게 부르는게 편하면 그렇게 부르던지. 그럼 잘 부탁해, buddy. " 맥코이는 주먹으로 커크의 어깨를 가볍게 툭 치고는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커크는 멍청하게 어깨를 내려다봤다. 버디라고?
그와는 그런 호칭도, 이런 친근한 스킨쉽도 전혀 나눌 수 없을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이상하게 편해지는 마음에 커크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어쩌면 의외로 맘이 잘 맞는 상대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병신들! 거기선 왼쪽으로 파고들었어야지!"
맥코이가 씹던 페퍼로니 피자를 입 밖으로 분출하며 화면으로 주먹을 부라렸다. 커크는 욕설을 내뱉으며 들고있던 맥주캔으로 탁자를 내리쳤다.
"댐잇! 어떻게 저기서 쟈니스를 빼고 펄론맨을 넣을수가 있지? 펄론이 사이드필드에서 쪽이나 제대로 쓸 덩치냐고!"
"내말이! 똥물에 튀겨죽일 감독놈 같으니라고!"
맥주 한캔이 더 비워졌다. 잠시후 반칙 장면이 화면에 뜨자 다시한번 욕이 터져나왔다.
"저 씨발! 지금 대놓고 걸었잖아! 정강이 일부러 찬 거 본즈 너도 봤지!"
"댐잇! 저 심판놈 가만안둘거야! 딴청을 피워???"
잠시 후 상대팀이 경기종료 7초를 남기고 터치다운을 하자 두남자 사이에선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비탄에 찬 탄식소리가 흘러나왔다. 맥코이가 등받이로 몸을 던지고 손으로 눈을 덮었다. "으으아아...아이오와 플릿츠Fleets 가 지다니.... 최악이야." 커크는 마시던 맥주캔을 짜부러트리고 어깨를 축 떨군채 양손에 얼굴을 묻었다. "심판 개새끼." "동감이다." 잠시 후에 맥코이의 손이 슬금슬금 뻗어와 탁자 위의 맥주를 한캔 더 땄다. "하나 더 마실래, 제임스?" 커크가 맥주캔을 받아들고 잠시 망설이다 대답했다. "짐이라고 불러. 내 친구들도 다 그러거든. 제임스라고 부르는거 완전 오랜만에 듣는데 되게 어색하네." 맥코이가 씩 웃었다. "그래. 그럼 짐. 지옥불에 쳐박아버릴 심판놈을 위해 건배?" 커크가 맥코이를 따라 웃었다. 맥주캔이 소리없이 흡입되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시 경기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됐다.
"그래도 오늘 파브리스는 진짜 잘했어."
"파브리스는 항상 최고시지." 커크의 손이 새 맥주캔을 따서 맥코이에게 건넸다. 맥코의는 맥주캔을 받아들었다. 커크가 자기 몫의 캔을 따 기울이며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니가 미식축구 보는줄 몰랐는데."
"열한살부터 팬이었어. 트레카도 모은다고."
"얼ㅋ. 트레카?" 커크가 휘파람이라도 불 것 같은 표정으로 맥코이에게 몸을 돌렸다. 맥코이는 술기운 탓인지 조금 우쭐한 표정을 지으며 가슴을 폈다. 커크가 특유의 짓궂은 표정을 지으며 팔꿈치로 본즈의 팔을 툭 쳤다. "얼마나 대단한 걸 모으길래 이렇게 잘난척이야?" 맥코이가 커크를 흘끔 보고는 악동같은 미소를 지었다.
"옐로 피카드 카드 정도는 있어야 트레카 좀 모았다고 할 수 있지."
"뭐? 옐로 피카드 카드?"
커크가 놀라서 목소리를 높이며 엉겁결에 들고있던 맥주캔을 짜부러트렸다. 4도 인쇄에서 인쇄공의 실수로 찍혀나가 만들어졌다는 전설의 카드였다. 19년째 아이오와 플릿츠를 응원하는 커크도 구경도 못해봤다. 맥코이는 뿌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커크는 입을 헤 벌렸다. 예전 불쾌했던 고백때는 이렇게나 재미있는 녀석일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었다. 커크는 카드를 보여달라고 했고 맥코이는 자기 집에 잘 보관해뒀으니 나중에 보여주겠다고 약속했다. 맥코이가 자신의 패드를 꺼내 보여준 사진엔 정말로 옐로 피카드 카드가 찍혀 있었다. 카드의 일련번호도 10번 안쪽이었다.
***
맥코이는 어깨에 묻은 물기를 털며 부엌쪽 출입문으로 들어와 식탁에 차 키를 내려놓다가 거실에 담요를 두른 채 유령처럼 서있던 커크와 눈이 마주쳤다. 맥코이는 인상을 쓰며 커크에게 다가왔다.
"너 아프냐?" 불쑥 큰 손이 다가와 이마를 짚었다. 손이 너무 시원해서 순간 다리가 풀릴 뻔했다. 커크는 잠자코 있었다. 맥코이의 손이 커크가 입에 물고있던 체온계를 빼갔다. "38도. 조금 있으면 뇌까지 잘 익겠군. 댐잇. 짐. 아프면 말을 했어야지."
맥코이는 커크에게 방에 가 누우라고 한 후에 방금 장을 봐온것들로 간단한 환자식을 만들었다. 침대에서 쟁반을 받아든 커크는 죽을 한 수저 떠서 입에 넣고 눈물을 찔끔 흘렸다.
"본즈, 니가 최고야. 나 이런거 처음 먹어봐."
맥코이는 드물게 풀어진 얼굴로 땀에 젖은 커크의 머리카락을 헝클었다. 어울리지 않게도 자애롭다는 느낌이 들었다. 빤히 쳐다보는 커크의 시선을 느끼자 맥코이는 킬킬거리며 "그걸 이제 알았냐? 더 자라. 약 먹을때 깨울테니까." 라고 말하고 방을 나갔다. 커크는 눈을 감았다. 몸은 땀에 젖어 무거웠지만 악몽 없는 편안한 잠이 찾아들었다.
***
맥코이와 함께 사는건 뜻밖에 편한데다가 재미있고 즐겁기까지 했다. 희귀 사자수인으로 부모님과 일찍 떨어져 계속 수인사회의 보호종으로 살아온 커크는 자신만만한 성격과 달리 뿌리깊은 애정결핍을 늘 겪고 있었고 커크가 몸이 약해 자주 아프다는걸 안 이후로는 엄마라도 된 것처럼 커크를 챙기는 맥코이의 태도에 감동받지 않을 수 없었다. 매일 아침 식사를 챙겨주고 건강상태를 묻는 맥코이와 함께 생활하는건 평온하고, 심지어 행복했다.
그래서 커크는 심하게 당황중이었다. "저, 저ㅡ, 본즈. 이건." 커크는 말을 더듬으며 자신에게 꼭 붙어 안겨들어 애교를 부리는 고양이수인 여자를 떼어내려 애썼다. 파트너와의 동거로 인해 최근에 계속 가지 않았던 클럽에 간만에 들렀다 마음이 동해 놀아제낀것까진 좋았는데 병원에 있어야할 시간에 맥코이가 집에 있었던 것이다. 왜 당황하거나 변명을 하는지도 모른채 쩔쩔매는 커크를 보며 맥코이는 잠시 눈살을 찌푸렸다가 고양이수인에게는 대충 웃어보였다. "아, 전 친군데 잠시 뭐 두고간게 있어서 잠시 들른겁니다. 금방 갈거에요 신경쓰지 마세요." 그리고 커크의 손을 잡아끌어 구석으로 갔다. 커크는 술에 취한 혀로도 계속 뭔가 변명하려고 했다. 맥코이는 그런 커크를 신경쓰지 않고 뭔가를 건넸다.
"...뭐야 이건?" 커크는 멍청한 표정으로 맥코이를 쳐다봤다. 맥코이는 미간에 주름을 잡고 커크가 들고있는 약봉지의 설명 부분에 손가락을 짚었다.
"뭐긴 뭐야. 네놈이 아침에 안처먹고 내버리고 나간 알러지랑 기침약이지. 뒹굴 때 뒹굴더라도 챙겨먹고 뒹굴어라. 안그러면 아침에 손이 두배 되어있을테니까." 커크는 약봉지를 쳐다보고 다시 맥코이의 얼굴을 쳐다봤다. "...이거 먹으라는 얘기 하려고 그런거야?" 맥코이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뭐? 다른 데 아픈데라도 있어?" 커크는 맥코이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다 고개를 흔들었다. 맥코이는 찜찜한 기분으로 커크에게서 물러났다. 뒤에서 술에 취한 여자가 갸르릉거리고 있었다. 맥코이는 여자의 아슬아슬한 차림에 눈이 가는 스스로를 막으며 대충 겉옷을 집어들고 밖으로 나갔다. 별달리 집을 비워달란 소리도 않았는데 맥코이는 그날밤 들어오지 않았다.
***
커크는 2주정도 얌전히 지낸게 내숭이었다는듯 하루가 멀다하고 집으로 클럽이나 술집에서 낚은 상대들을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아예 외박하는 날도 적잖게 있었다. 상대들은 보통은 하나였지만 때론 둘, 셋일 때도 있었고 성별도 대중이 없었다. 밤도 낮도 가리지 않아 커크와 얼굴을 마주치는게 어려웠다. 3일만에 커크가 집에 돌아와 잠든 다음날 아침, 맥코이는 팔을 걷어붙이고 커크의 침대 앞에 섰다. 비장한 표정으로 시트를 확 걷은 맥코이는 조금 무안한 얼굴로 시트를 다시 덮었다. 그리고 목소리를 높였다.
"제임스 커크. 일어나서 세수하고 나와. 할 얘기가 있으니까." 커크는 까치집이 된 머리를 시트 밖으로 내밀었다. "...본즈. 어제 나랑 같이 온 애들은?" 방 밖에서 대답하는 소리가 멀게 들렸다. "밖으로 내보냈어."
커크는 10분쯤 후에 세수를 하고 옷은 갖춰입은 몰골로 얼굴을 내밀었다. 맥코이가 앉아있는 쇼파로 가던 커크는 등 뒤에서 껴안는 가는 팔과 확 풍기는 향기에 걸음을 멈췄다. "자기, 잘 잤어?" "달링, 굿모닝. 아침 잘 먹었어." 맥코이는 그런 커크쪽을 힐끗 보고는 들고있던 패드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커크가 고개를 돌렸다. 입에서 황당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니들 아직 안 갔어? 본즈, 내보냈다는게 침실에서 내보냈다는 뜻이었어?"
"어머. 자기 너~무 매정하다."
"가려던 참인데. 무정하기는."
대칭으로 생긴 미녀 쌍둥이는 웃으면서 커크의 양 뺨에 키스를 퍼붓고나서야 물러났다.
"자기 친구도 멋있더라."
"완전 젠틀하고."
"덕분에 아침 잘 먹었다고 전해줘."
"연락한다고도."
"후크 채워줘서 고맙다는것도."
"담에 또 봐, 달링."
쌍둥이가 나가고나서야 커크는 맥코이에게 가 앉을수가 있었다. 맥코이는 패드를 내려놓고 양손으로 커크의 얼굴을 잡아 이리저리 살폈다.
"...뭐 하는거야."
"진찰한다. 이 빌어먹을 놈아." 맥코이는 혀를 찼다. "며칠만에 얼굴이 이게 뭐냐? 반쪽이구만." 커크는 맥코이의 손을 쳐냈다. 이유모를 짜증이 들끓었다. 맥코이는 별로 개의치않는 얼굴로 다시 조금 더 부드럽게 커크의 뺨을 잡아 이리저리 돌리며 살폈다.
"노는 것도 좋지만 적당히 해야지 몸 축난다. 이래서 나중에 내 트레카 보러 놀러오겠냐?" 맥코이는 얼굴에서 손을 떼고 커크에게 약 몇종류를 건넸다. 커크는 손바닥 위에 놓인 알약을 내려다봤다.
"되도록이면 저녁에 놀고 밤이랑 새벽에는 자. 넌 순혈종인데다가 수인으로서의 부분이 지나치게 강해서 인간인 부분이 그 반동으로 많이 약해. 수인들하고 관계맺는건 괜찮지만 인간들하고는 왠만하면 하지마. 안 맞아서 점점 더 약해져."
"-아까 걔들한테 아침 차려줬어?" 커크의 목소리에 날이 서 있었다. 실제였다면 꽤 깊게 찔릴만큼 날카로웠다. 본즈는 느끼지 못한 채 패드에 커크의 데이터를 입력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어. 배고프다길래." 커크는 한참 대답이 없다가 한참만에 툭 내뱉었다. "몸치장하는것도 도와줬고?" 본즈가 패드에서 고개를 들고 투덜거렸다. "안 봤어. 아무것도 안 봤어. 그냥 해달라길래 해준거야." 그리고 다시 패드에 고개를 묻었다. "번호도 줬어?" 커크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가라앉았지만 본즈는 여전히 눈치채지 못했다. "너 연락 잘 안된다고 울먹울먹하더라. 나야 여기 오래 있을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있는 동안 연락 대신 받아주는거정도야 어렵지 않으니까." 본즈가 고개를 들어 문득 커크의 얼굴을 보고 인상을 쓰며 손을 들어 커크의 미간을 짚었다. "표정 펴. 니 여자친구들인거 나도 알거든? 내가 그럴 놈으로 보이냐?"
***
본즈는 최근 커크가 신경쓰였다. 집 밖으로 나와 담배에 불을 붙인 본즈는 담배를 피우는 대신 손 닿는 담장 위에 세우고 휴대폰을 들어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가고 곧 누군가가 전화를 받았다.
"그래. 나야, 레니. 요청할 게 있어. 아니, 제임스 커크에 대한 건으로. 슬슬 6주가 되어가니 내 재배치를... 응? 아니, 짐한테는 아무런 문제도 없어. 직접 확인한건 아니지만 아주 팔팔해. 여성체를 더 선호하는거같기는 한데...그래. 알아. 지금 가임기인 상위종 여성체 없는거. 내말은 하다못해 좀 여성체같은 분위기라도.... 뭐? 아, 우리? 문제가 있는게 아니라 우리가 예전에 알던 사이라서 좀 그렇더라고. 대학 동창이야. ...아냐! 댐잇!, 친구! 아니라고! 무슨 소리를 어디서 들었는진 몰라도 절대 아니야. 아무튼....응. 그래. ...다음 이동지 나오면 연락 부탁해."
맥코이는 통화를 마치고 뺨을 긁적였다. 그의 상관은 맥코이가 커크를 부르는 짐이라는 호칭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맥코이는 괜히 툴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친구랑 프레그넌트쉽 파트너가 다른게 당연하지. 하여튼 이놈이나 저놈이나...."
애인사이냐니 무슨 헛소리야. 누가 그딴소릴 해. 빨리 재배치 장소나 정해줄 것이지. 맥코이는 핑계삼아 불을 붙여놓았던 담배를 벽에 비벼끄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모퉁이 너머에서 듣고있던 커크도 소리없이 앞문으로 미끄러지듯 돌아 들어갔다.
***
본즈는 좋은 동거인이었다. 정말로 친절하고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신경을 썼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
마음을 정리했다고 한 말이 어찌나 칼같았던지.
***
최근에 커크가 계속 이상했다. 맥코이는 벽에 걸린 달력을 쳐다봤다. 재배치 날짜가 3일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맥코이는 조금 갈등하다가 다시 에이전트한테 전화를 걸었다.
커크와 다시 만나 친구가 된 건 정말 기쁘고 행복한 일이었지만 맥코이 자신은 그게 얼마만큼의 연기와 철저한 자기기만 위에 세워진 신기루인지 잘 알았다. 아마 이 꿈같던 6주가 끝나고나면 레너드 맥코이가 제임스 커크를 만나는 날은 다신 오지 않으리라는 것도. 기한이 정해져있었기에 스스로마저 속이는게 가능했다. 맥코이는 자기 자신을 그렇게 신뢰하지 않았다. 다짐했던 6주 이후에 다시 커크를 본다면 다시 언제고 무너져 내릴 것이다. 그렇게 되기 전에 이게 마지막이라면 둘이 친구로 지낼 수 있었던 거짓말같은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 커크에게 주고 싶은게 있었다. 맥코이는 에이전트에게 자신의 집에 있을 옐로 피카드 트레이딩 카드를 가져다 달라고 부탁하고 전화를 끊었다. 에이전트가 카드를 맥코이에게 전해준 건 그로부터 이틀이 지난 저녁, 맥코이가 커크와 맺은 파트너쉽의 마지막 날이었다.
"고마워." 맥코이가 카드를 받고 머쓱하게 말했다. 산뜻한 백금발의 단발머리가 살랑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선글라스 아래의 입매가 방긋 웃었다. 맥코이도 어색하게 따라 웃었다. 에이전트 캐롤 마커스는 맥코이가 가임 중상위종 수인으로서 1년 반쯤 전 가임기가 시작된 이래로 계속해서 그의 배치와 주거 및 이주, 생활 전반을 돌보아주고 있는 사람이었다. 친구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오래 알아온만큼 어느정도 친밀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이였다. 캐롤이 선글라스를 벗고 자신의 뺨을 톡톡 건드렸다. "말로만 때우려구요?" 맥코이의 얼굴이 시뻘개졌다. 맥코이는 안절부절하다가 캐롤의 뺨에 훔치듯 입술을 찍고 재빠르게 떨어졌다. 배를 잡고 웃는 그녀는 수인관리국의 고위공무원이라기보단 그저 장난기 많고 쾌활한 소녀처럼 보였다. 그녀가 다시 선글라스를 끼고는 입을 열었다.
"지난번에도 한 얘기지만, 반복되는 배치가 힘들면 말해줘요. 난 언제든지 환영이니까." 맥코이는 피식 웃었다. 맥코이보다 열 살이 넘게 어린 이 아가씨는 종종 이런 농담을 하곤 했다. 그녀의 신분이 수인관리국장의 하나뿐인 외동딸이라는걸 알고있는 맥코이에게는 실없는 농담으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래, 백마탄 왕자님. 구해줬으면 싶을때 전화할게."
맥코이는 캐롤을 배웅하고 집으로 들어갔다. 마지막 날이라 커크와 저녁이라도 같이 먹을 생각이었다. 식재료를 손질할 궁리와 건강관리에 대해 늘어놓을 잔소리를 생각하며 문을 연 맥코이는 머리를 짓누르는 압력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최상위종이 가할 수 있는 압력이었다. 맥코이는 한 번도 이 집안에 사자수인이 있다는걸 실감해본적이 없었다. 공포와 압력을 함께 느끼면서 맥코이는 의식을 잃었다. 코피가 터져 부엌바닥에 고였다. 부엌으로 들어선 커크가 차가운 눈으로 맥코이를 내려다보다가 팔을 잡아 몸을 일으켜 세웠다. 침실로 끌려들어가는 몸뚱이의 발끝이 질질 끌렸다.
***
커크는 손을 들어 맥코이의 뺨을 내리쳤다. 의식을 반쯤 잃은채 희미하게 꿈틀거리던 맥코이가 정신을 차린 듯 다 갈라진 목소리로 커크의 이름을 불렀다. "...짐?" 커크는 대답없이 맥코이의 어깨를 틀어쥐고 목에 이를 세웠다. 맥코이의 몸이 굳었다. 커크는 허우적거리며 어깨를 밀쳐내는 손을 잡아 망설임없이 꺾었다. 우드득, 소름끼치는 소리가 나며 맥코이에게서 비명이 터져나왔다. 고통에 헐떡거리며 몸을 비트는 맥코이의 턱을 잡아 벌리고 커크는 집안 여기저기 비치되어있던 약을 털어넣었다. 정신이 없는 상황에서도 맛으로 무슨 약인지 알아차린듯 맥코이가 몸을 비틀며 약을 뱉어내려고 했지만 커크가 그렇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턱을 붙들어 입술을 겹치자 맥코이가 부르르 떨었다. 고개를 비틀며 피하려는 몸을 시트 위로 강하게 쳐박아 짓누르면서 턱을 쥔 손에 힘을 주자 괴로운 신음소리와 함께 저항하던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커크는 맥코이가 약을 삼킬때까지 진득하게 입을 맞추다가 입술을 뗐다. 맥코이는 울고 있었다.
"본즈."
맥코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반쯤 넋이 나간 상태였다. 커크는 맥코이의 고개를 돌려 자신을 보게 만들었다.
"그게 돼? 전교생 앞에서 고백하면 받아준다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믿고 정말 그렇게 할 정도로 날 좋아했잖아. 전교생 앞에서 쓰레기취급을 했어도 끈질기게 따라붙던 눈이 아직도 기억나. 그런데 고작 6년만에 그 감정이 다 사라진다고? 어떻게 그게 가능해?"
맥코이의 눈동자가 깜빡 움직여 커크를 쳐다봤다. 아직은 눈동자에 이지가 남아있었지만 커크는 오랜 경험으로 몇 분 지나지 않아 저 눈동자가 열락으로 흐려질걸 알았다. 눈물에 젖은 눈가를 한번 문질러주고 커크는 맥코이의 셔츠를 뜯어내듯 벗겨냈다. 맥코이가 이를 악물고 고개를 도리질치며 앓는 소리를 냈다. 애처로운 의사표현이었지만 커크에겐 효과가 없었다. 맥코이는 몸을 옹송그렸다. 출산의무를 위한 수인용 발정제는 두번정도 사용해본 적이 있었지만 이번것처럼 강력하고 순도 높은 약은 처음이었다. 분명 희귀종인 커크를 위해 구비해놓은 약일 터였다. 몸이 타는 것 같았다. 온 몸이 불 속에서 타는것처럼 뜨거운 와중에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만 시렸다. 커크는 맥코이의 옷을 마저 벗겨내 침대 아래로 집어던졌다. 맥코이는 정신을 차리려고 애쓰며 커크의 팔을 붙들었다. 몸 안에서 날뛰는 열이 당장 눈 앞의 상대에게 매달려서 어떻게 해 달라고 애원하라고 명령하고 있었지만 맥코이는 필사적으로 충동을 억누르며 고개를 흔들었다. 머리카락 끝에서 땀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짐.... 제발." 커크는 냉담하게 맥코이의 손을 떼어내고 몸을 돌려 엎드리게 만들었다. 어깨를 들썩이며 우는 소리가 났다가 시트에 고개를 쳐박으며 거의 들리지 않게 줄어들었다.
"어차피 여기 올 때 목적이 이거였잖아. 아직 우린 파트너쉽 기간이야. 내가 아니었더라도 뒹굴어서 상위종의 아이를 가질 생각으로 여기 온거잖아. 새삼스럽게 왜 거절해?"
말이 되지 못한 소리가 짧게 끊어졌다. 맥코이의 손끝이 시트를 긁다가 미끄러졌다. 침대 아래를 향해 허우적거리는 손짓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팔을 등 뒤로 잡아당겨 꺾자 막힌 듯한 짧은 비명소리와 함께 구겨진 시트처럼 바르작거리던 몸이 저항을 멈췄다. 커크는 맥코이의 다리를 벌렸다. 약을 쓴 탓도 있을 테지만 가임종 수인답게 남성체인데도 몸은 매끄럽게 열렸다. 커크는 잔뜩 젖어 뜨거운 안쪽에 손가락을 밀어넣어 몇 번 헤집었다. 체액이 흘러 시트 위에 투둑 떨어졌다. 별 저항 없이 열리는 몸을 눈 앞에서 보자 참기 어려웠다. 커크는 등 뒤로 꺾은 맥코이의 팔을 힘주어 잡아당기면서 난폭하게 한번에 끝까지 삽입했다. 대번에 허리가 튀어오르며 울음섞인 신음소리가 터졌다. 교태나 아양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그저 아프고 생소한 감각에 숨이 높게 터지는것에 불과한 소리였는데도 한순간에 머리 끝까지 열이 올랐다. 커크는 이성을 놓고 마구 박아대고 싶은걸 참으면서 고개를 숙여 흐느끼는 등에 이마를 대고 숨을 골랐다. 팔 아래 갇힌 몸은 열이 올라 뜨거웠다. 커크는 땀에 젖은 미끄러운 등줄기에 입술을 묻고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별로 관리국이 원하는대로 아이같은 거 줄 생각 없었어... 그런데 생각이 바뀌었어. 본즈. 네가 가지 않았으면 좋겠어. 내 아이를 가져. ...나한테 등돌리지 마."
통제되지 않는 몸과 달리 의식은 최소한의 이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커크가 한 말을 맥코이는 또렷하게 들었다. 가임종 수인들의 프레그넌트 파트너쉽에 항상 따라다니는 소리없는 비난들. 화대 없는 창녀. 기간제 더치와이프. 글쎄. 종족의 사멸을 막기 위해 일부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그 종은, 그 사회는 그럼 포주라고 불려야 옳았다. 딱히 거절할 수 없으니 이 짓을 하고 있을 뿐,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상대와 단지 종과 신체 조건만을 맞춰서 일정 기간동안 붙어먹고 임신이 안 되면 빠이빠이하는 그런 관계를 반복하면서 어느 누가 정신이 멀쩡할까. 맥코이는 가임종 수인으로 발현한지 얼마 되지 않은 탓에 이런 생활을 한 것도 짧았다. 하지만 쉽지는 않았다. 커크처럼 불편해하거나, 냉대하거나, 대놓고 모욕을 받는 일도 흔했다. 그 미친 시간들을 버티는건 정말로, 정말로 어려웠다. 맥코이는 6년 전 한순간에 자신을 매료했던 반짝이는 얼굴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밀짚 색의 밝은 금발 아래 반짝거리는 파란 눈이 빛을 받으면 정말로 예쁜 아이스블루 색으로 보인다는걸 알았을 때는 이미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고 있었다. 그저 한순간의 장난을 위해 멍청하게 이용당하고, 아웃팅당하고, 학교에서 온갖 모욕과 수난을 겪다가 결국 자퇴를 해야 했을때도 그저 그 얼굴이 예뻐서 원망할 수가 없었다. 쳐다볼 수 없는 곳을 쳐다봤던게 잘못이라며 스스로를 다독거려 내내 눌러왔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맥코이는 등 뒤의 상대에게 뚫려 들쑤셔지면서 침대 아래 널부러진 옷가지들을 보고 있었다. 잔뜩 구겨진 바지의 주머니에서 마찬가지로 구겨진 트레이딩카드가 반쯤 나와 있었다. 정말 소리내서 울 것 같아서 맥코이는 시트에 이마를 대고 이를 악다물며 눈을 감았다.
"나 리체랑 만나. 어제부터."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맥코이는 옷을 주워입던 손을 잠시 멈췄다. 그리고 돌아보지 않은 채 마저 손을 움직여 벨트를 채우면서 대꾸했다. "잘됐네. 나 간다." 침대에 누운 손이 얄밉게 살랑살랑 손인사를 해왔다. 맥코이는 바닥에 떨어져있는 상의를 주워들어 얼굴에 던졌다. "빨리 쳐 입고 너도 나가. 40분있다가 수업 시작이잖아."
기숙사 밖으로 나온 맥코이는 본관과 흡연실이 있는 별관을 번갈아 보며 잠시 고민했다. 오늘 수업은 3학점짜리고 필수에 전공인데다가 교수가 출석에 유별나게 집착했다. 만약 지금 본관으로 가지 않는다면 불보듯 뻔하게 지각을 할 것이고 그랬다간 학기 초부터 새벽 네다섯시까지 술을 마시고도 깨질듯한 머리를 잡고 죽어라 출석한게 전부 허사로 돌아갈 것이다. 7시까지 술을 마시고 8시에 수업을 갔던 날은 정말로 교과서가 변기로 보였었다. 한 시간 내내 수업 내용은 커녕 전공서적에 토하지 않으려고 입을 틀어막고 있었던 그 고행의 시간들이란. 맥코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ok, ok. 그리고 별관쪽으로 향했다. 별관으로 들어서서 맥코이는 코트의 주머니를 뒤졌다. 커크가 어제 입었던 옷이니 분명 담배가 들어있을 터였다. 맥코이는 반대편 주머니도 뒤져봤다. 집히는대로 집어넣는 커크답게 반대쪽 주머니에는 라이터도 있었다. 럭키. 맥코이는 아직도 방에서 뒹굴고 있을 커크에게 감사인사를 전하며 담배를 한개비 빼 입에 물고 나머지는 콱 구겨 아무렇게나 쓰레기통에 던져넣었다. 급히 불을 붙이는 손이 조금 떨려 입술을 델 뻔 했다. "Damn it! 앗, 뜨거! 젠장!" 몇번 욕설을 반복해 내뱉고 맥코이는 겨우 담배에 불을 붙여 물었다. 호흡이 가쁘고 눈앞이 캄캄해지는건 2년만의 니코틴이 너무 자극적이기 때문이다. 맥코이는 어질해진 머리를 벽에 기대며 흡연실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담배를 깊이 한모금 빨아들이고 맥코이는 손가락 사이에 낀 담배를 눈 앞으로 가져와 필터의 상표를 읽었다. 말보로 레드. 꼭 지같은 거 피지. 골라도 꼭 존나 독한 걸로 골라서 피워요. 빨리죽는다고 그렇게 말을 해도. 맥코이는 폐를 돌아나온 담배연기를 길게 뱉었다. 코와 목을 거친 흰 연기가 매캐하게 흩어졌다. 2년만의 니코틴은 너무 달고 썼다. 눈물이 맺힐 정도로. 맥코이는 쓴웃음을 지었다. 어제까지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미친 짓이 벌써 2관왕이었다. 무단결석에, 흡연에.
어쩔 수 없잖아. 맥코이는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도 괜시리 찔려 속으로 변명을 중얼거렸다. 아무튼 2년동안의 짝사랑이 병신놀음으로 끝난 날은 미친짓 한두가지 정도는 해도 괜찮지 않은가.
***
"레니, 혼자야? 나 여기 앉아도 돼?" 맥코이는 손에 들고있던 수저를 입으로 가져가면서 시선을 흘끔 위로 올렸다. 긴 갈색머리를 한 서글서글한 눈매의 여학생이 눈웃음을 치며 앞에 서 있었다. 맥코이는 입에 퍼넣은 리조또를 우물거리며 옆의 의자를 반쯤 빼줬다. 여자는 고맙다고 말하며 옆자리에 앉았다.
"왠일로 혼자 밥먹어? 네 단짝은 어쩌고?" 맥코이는 리조또를 크게 한술 퍼넣고 우물거리며 엄지손가락으로 등 뒤를 가리켰다. 세줄 너머 테이블에 밝은 금갈색 머리카락의 여자와 꼭 붙어앉아 시시덕거리는 커크가 있었다. 여자의 표정이 알겠다는 듯 바뀌었다. "아하. 소문이 사실이었네. 여자애들 장난 아니게 떠들겠는걸." 맥코이는 대꾸하지 않고 남아있던 리조또를 닥닥 긁어 입에 퍼넣은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천히 먹어. 먼저 간다." 여자가 당황한 표정으로 "레니, 잠깐만!" 이라고 불렀지만 맥코이는 돌아보지 않고 식판을 들고 식당을 벗어났다.
***
제임스 커크는 아무튼 (좋은 의미로나 나쁜 의미로나) 유명인이었고 1학년때부터 열올리던 레이첼이 드디어 커크에게 넘어갔다는 소문은 학교 내에 빛의 속도로 퍼졌다.(이번에는 '그' 제임스 커크가 정말 진심이라는 출처모를 해설을 덧붙여서. 사실 꼭 틀린것같지도 않았다. 한달이면 연애 한 텀을 끝내는 커크가 한달 내내 키스만으로 만족하고 매일밤 기숙사에 고이 돌려보낸 건 레이첼이 처음이었으니까.) 여학생들의 트위터 계정은 주고받은 멘션으로 폭발했다. 방과후 클럽, 학교 근처의 술집에서 학생들이 모여있는 곳 어디라도 커크와 레이첼에 대한 이야기 한 토막을 주워듣는건 어렵지 않았다. 맥코이는 그 모든 상황에 넌덜머리가 났다.
맥코이는 혼자 있을 수 있는 곳을 찾아다녔다. 커피가 더럽게 맛없고 비싸서 치정극을 벌일때가 아니면 아무도 가지 않는 교내 카페테리아, 습기가 차고 곰팡이냄새가 심해 인적이 뜸한 본관 지하1층의 자습실, 별관에 있는 정기간행물용 구 도서관(냉난방시스템이 없어서 여름에 죽을만큼 덥고 겨울엔 뼛속까지 시리다).... 커크와 레이첼에 대한 입소문과 가십에는 맥코이의 이야기도 포함되어 있었다. "레오나드 맥코이. 이번엔 왠일로 커크 커플이랑 같이 안 다닌다니?" "같이 안 다니는게 아니라 아예 안 보이던데. 못본지 좀 된 것 같아." "수업엔 들어오는거 같던데...."
맥코이는 얼굴을 덮고 있던 책의 아래쪽을 조금 들어올려 속닥거리면서 멀어지는 뒷모습을 확인했다. 둘 다 아는 얼굴이었다. 맥코이는 한숨을 내쉬고 도로 책을 얼굴에 덮었다. 눈에 잘 띄지 않는 한적한 도서관 구석자리는 혼자 있긴 좋았지만 종종 책과 착각당하게 되는 단점이 있었다. 서가 뒤에 사람 있다고. 최소한 남의 뒷얘기를 할때는 주변에 그 놈이 있는지정돈 확인하고 떠들란 말야. 댐잇. 더 누워있어질 마음이 없어져 맥코이는 주섬주섬 짐을 챙겨들었다. 커크의 시간표는 꿰고 있었다. 기숙사에 없을 시간임을 확인한 후 가방을 들쳐메고 맥코이는 도서관을 나갔다.
*
"얼굴 보기 힘드네, 본즈." 기숙사 방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삐딱한 목소리가 맥코이를 반겼다. 맥코이는 인상을 썼다. 밖에서 봤을 때 방 창문에 불이 꺼져있어 방심했다. 불 꺼진 방에서 커크가 문을 똑바로 노려보고 있었다.
"이시간에 왜 여기 있어?"
맥코이는 저절로 퉁명스러워지는 목소리를 굳이 감추지 않으며 불퉁하게 메고있던 가방을 내려놓고 모자를 벗었다. 낡은 카키색 야상의 어깨를 털자 아까부터 조금씩 날리기 시작한 진눈깨비 조각이 투둑 떨어졌다. 맥코이의 침대 위에 앉아 팔짱을 끼고 이쪽을 노려보던 커크의 눈이 가늘어졌다. 맥코이는 못본 척했다. 옷이 두꺼워 눈은 얼마 맞지 않았지만 여태 난방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구 도서관의 차디찬 바닥에 누워있다가 나와서 찬바람을 맞았더니 뼈마디가 쑤셨다. 뜨거운 물로 샤워라도 해야 할 것 같아 입고 있던 스웨터를 훌렁 벗어 떨어트리고 옷장 서랍을 뒤져 갈아입을 옷을 꺼내는데 등 뒤에서 커크가 달라붙었다. 의도가 다분한 손이 허리를 감아들고 어깨에 턱을 얹었다.
"엄청 오랜만인데 왜 이렇게 매정해. 며칠만에 보는 건지 알아?" 귓가에 살살거리는 장난기어린 목소리에 속 어딘가가 뜨끔하게 당겼다. 폐에 갈고리가 걸리는듯한 느낌에 본즈는 인상을 쓰면서 팔꿈치로 커크를 밀었다. 커크가 조금 밀려나는가 싶더니 다시 달라붙었다.
"본즈. 간만인데 하자. 나 지금 하고 싶어."
맥코이의 움직임이 뚝 멎었다. 맥코이는 심장이 멎을 것 같은 기분과 눈 앞에서 벼락이 치는듯한 기분을 동시에 맛봤다. 제임스 커크가 그 특유의 널뛰는 변덕과 예측할 수 없는 행동으로 사람의 심장을 들었다 놨다 하는건 이제 제법 익숙해진 일인데도 그랬다. 맥코이는 심호흡을 하고는 표정을 고치며 몸을 돌렸다. 커크를 돌아보는 얼굴은 어이없다는 표정과 짜증과 피로함이 절묘하게 얽혀있었다. 맥코이는 손가락으로 커크의 이마를 죽 밀어냈다. "번짓수 틀렸다. 하고 싶으면 니 애인한테 가."
커크가 인상을 썼다. "갑자기 왜 그래. 언제부터 그런 거 신경썼다고." 맥코이는 목 끝까지 치미는 한숨을 삼키면서 미간을 찡그렸다. 1년이 넘게 늘 애인이 있었던 놈과 붙어먹은건 사실이지만 신경을 쓰지 않은 건 아니었다. 말을 하지 않았을 뿐이지. 게다가 지금은 그때와는 또 경우가 다르지 않은가. 2년간 거의 매일같이 꿈에 그리던 자기 이상형이라고 노래를 불렀던 사람과 드디어 사귀게 되었는데 굳이 자기한테 와서 뒹굴자는 저 머리통 속에 든 생각이 알고 싶었다. 아니, 사실은 전혀 알고 싶지도 궁금하지도 않았다. 맥코이가 바라는 건 그저 커크가 지금 당장 눈앞에서 사라져주는것 뿐이었다.
"이제 너랑 안해. 비켜. 샤워할거야."
"뭐?"
"샤워할 거니까 비키라고."
"왜 안 하는데?"
"댐잇, 커크! 좀 떨어져!"
"본즈."
"그렇게 부르지도 말고."
맥코이는 목과 어깨를 감은 커크의 팔을 잡아 떨쳐냈다. 등 뒤에 달라붙은 몸을 적당히 밀쳐내 떨궈놓고 나서야 겨우 옷을 집어들고 샤워실로 갈 수 있었다. 커크는 거짓말처럼 조용히 서있었지만 맥코이가 방을 나갈때까지 등 뒤에 끈질기게 달라붙는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맥코이는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긁으며 샤워실로 가는 복도를 가로질렀다. 손에 든 수건이 버석버석해 기분이 더러웠다.
맥코이가 샤워를 마치고 돌아오자 커크는 방에 없었다. 제법 화가 났던 듯 커크의 소지품과 옷이 어지럽게 바닥에 널려 있었다. 평소같았으면 혼자 중얼중얼 잔소리를 하며 치웠겠지만 지금은 손끝 하나 까딱하고 싶지 않았다. 맥코이는 발끝에 걸리는 커크의 자켓, 목도리, 셔츠와 바지, 담뱃갑과 각종 잡동사니들을 피해 침대로 가 앉았다. 침대에 앉아 방 안을 보니 폭탄 맞은듯한 꼴을 하고 있었다. 지치고 피곤해져 맥코이는 젖은 머리를 두어번 성의없이 털다가 수건을 집어던지고 침대에 벌렁 드러누웠다. 기숙사 방은 늘 온도가 낮았고 그대로 자면 감기에 걸리는건 물론이요 아침에 새둥지 부럽지 않은 꼴로 일어나야 할 게 뻔했지만 지금은 그런 것에 신경쓰고 싶지 않았다. 맥코이는 머리 끝까지 이불을 뒤집어쓰고 눈을 감았다. 커크는 새벽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
2년동안 커크 옆에 맥코이가, 맥코이 옆에 커크가 있었던 게 당연했던 풍경이었던것 만큼 당연하게 둘은 서서히 멀어졌다. 커크에 대해 물으면 당연한 듯 나오던 대답이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나도 몰라." 라는 말로 바뀌었다. 자기 학부도 아닌 강의실에 쳐들어와 '본즈'를 찾는 쩌렁쩌렁한 목소리도 듣기 힘들어졌다. 처음에는 무슨 일이 있었냐며 수근대던 목소리들은 "이게 당연한 거다." "그 전까지가 이상스럽게 친했던 거지." 로 바뀌어갔다. 11월이 지나고 다시 12월이 지났다. 서리가 눈으로 바뀌고 진눈깨비는 폭설이 되었다. 커크와 맥코이 사이에는 최소한의 일상대화만 존재했다. 그나마도 점차 떨어지는 기온처럼 적어졌다. 맥코이는 새벽에 기숙사 방을 나가서 한밤중에 돌아왔다. 얼굴을 마주칠 일이 그다지 없었지만 얼굴을 마주쳐도 서로 특별히 아는 척을 하지도 않았다. 맥코이는 추워지는 기온처럼 점차 안으로 침잠해갔다. 우습게도 그는 거기서 평온함을 느꼈다.
"짐. 좀 치워봐." 레이첼이 불편한 표정으로 커크의 턱을 밀어냈다. 커크는 얼떨결에 뒤로 밀려났다가 애교스럽게 미소를 지으며 다시 기어 레이첼에게 다가붙었다. "또 왜 그래, 오늘은. 아까는 기분 좋다고 했었잖아." 레이첼이 짜증을 내며 쏘아붙였다. "그만 좀 해. 싫다고 했잖아." 레이첼의 변덕은 자주 있는 일이었기에 커크는 짜증을 참으면서 레이첼을 달래려고 애썼다. 방금 전까지 분위기는 꽤 좋았고 커크는 제법 흥분한 상태였다. 레이첼의 집까지 오는 것도 쉽지 않았기에 커크는 레이첼을 달래며 비위를 맞춰주려 했지만 레이첼은 이미 흥이 깨진 듯 싸늘한 눈으로 커크를 노려보며 재차 비키라고 반복해서 말했다. 커크는 목 끝까지 치미는 불쾌감을 삼키며 억지로 웃었다. "Ok, Ok. 알았어." 커크는 양 손을 보란 듯이 펴서 들어보이며 몸을 떼 뒤로 물러났다.
커크가 손을 놓자 레이첼은 정말로 짜증이 난 듯 홱 몸을 일으켜 바닥에 떨어트렸던 웃옷을 집어올리고는 머리를 넣었다. 헐렁한 천이 늘씬하고 가느다란 어깨를 지나 그림같은 선을 그리며 떨어졌다. 레이첼은 어깨를 감싸안고 잠시 씨근거리다가 몸을 돌려 커크의 눈을 똑바로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제임스. 똑바로 말해. 나 바보 아니야. 너 다른 사람 있지? 대체 어떤 년이야?" 커크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레이첼. 무슨 소릴 하는거야? 알잖아. 너밖에 안 만나는거." 레이첼이 인상을 확 구기며 머리카락을 거칠게 쓸어올렸다. 레이첼은 짜증을 내도 영화의 한 장면처럼 예뻤다. 확 젖혀지는 머리카락에서 달콤한 향기가 풍겼다. 길고 부드러운 금갈색의 머리카락이 어깨를 타고 흘러내렸다. 커크는 저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가 레이첼에게 손등을 맞았다. 제법 아픈 소리가 나고 오른손의 손등에 손톱에 긁혀 빨갛게 부어오른 상처가 났다. 통증이 느껴지자 짜증이 확 치솟았다. 커크가 인상을 구기자 레이첼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제임스 커크, 사람 바보 취급하지 마. 내가 그런 것도 눈치 못 채는 바보같아? 너 지금 날 가지고 노니? 하나씩 말해볼래? 내가 말했지, 턱 아래 건드리는 거 싫다고. 개 취급 받는 것 같아서 기분 나쁘다고! 너 툭하면 여기저기 이 세우는거, 아프기도 하고 자국 남으면 연습복 입을때 신경 쓰이니까 하지 말라고도 했었고. 허벅지 안쪽 자꾸 만지는거 쓰라려서 싫다고도 네다섯번은 말했었어! 도대체 누구야? 턱 아래를 건드리면 좋아하고, 네가 온갖 데를 다 물어뜯고 자국을 남겨놔도 신경도 안 쓰고, 허벅지 안쪽 만지는 걸 좋아하는 그 여자가 대체 누구냐고!! 이게 벌써 몇 번짼데, 이래도 아니야? 이래도 다른 년이 있는 게 아니라고??"
말 끝에 분을 이기지 못한 레이첼이 손에 집히는 물건을 닥치는대로 커크에게 집어던졌다. 자명종이 커크의 왼쪽 어깨에 명중하고 떨어져 발등을 맞췄다. 커크는 비명을 지르며 껑충 뛰었지만 레이첼은 멈추기는 커녕 물건들을 더 집어던졌다. 커크도 영문모를 비난에 그저 맞아주는 성격은 아니었기에 성큼성큼 다가가 레이첼의 팔을 붙들었다. 레이첼은 악다구니를 퍼부었다. "나가, 당장 나가!! 꼴도 보기 싫어!!" 째지는 목소리에 울컥 짜증이 치솟았다. 누군가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커크는 저도 모르게 이를 꽉 물었다가 붙들고있던 레이첼의 팔을 뿌리치고 몸을 돌렸다. 바닥에 내던져진 레이첼이 찢어지는 목소리로 흐느끼며 커크를 불렀지만 커크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
맥코이는 한손에 반쯤 남은 잔을 든 채 전공서적을 보고 있었다. 알콜에 반쯤 잠긴 눈에 제대로 내용이 들어올리 만무했지만 머리가 아파 잘 수가 없어 어쩔 수 없이 택한 방법이었다. 열두시로 넘어가면서 눈발이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열두시가 넘도록 들어오지 않으면 커크는 보통 외박을 한다고 봐도 좋았기에 맥코이는 편안한 차림으로 술을 마시면서 건성건성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유리창을 흔드는 바람이 날카롭게 울었다. 맥코이는 잔이 빈 걸 깨닫고 테이블에 올려둔 술병을 집었지만 술병도 비어있었다. 맥코이는 인상을 썼다. 비싼 건 아니었지만 맛이 마음에 들어 침대 밑에 넣어두고 가끔 한잔씩 꺼내마시던 술이었는데 무심코 마시다보니 다 마셔버렸다. 두통이 문제였다. 맥코이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두통을 가라앉히려고 애썼다. 두개골 안에서 난쟁이가 정으로 창문을 뚫고 있는 것 같았다. 쿡쿡 신경을 갉는듯한 통증이 방향을 바꿔가며 두개골 속을 누비고 있었다. 정으로 찍는 간격이 점차 조밀해지고 강해졌다. 맥코이는 한숨을 쉬며 보던 책을 내려놓았다. 잘 수 없을 것 같았지만 한 글자도 눈에 들어오지 않아 눕는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문이 덜컹거려 맥코이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문틀에 뭔가 끼워둬야 할 것 같았다. 창가로 다가가는데 무릎이 휘청했다. 맥코이는 창문 틀에 방풍재 대신 끼워놓는 낡은 티셔츠를 둘러 틈을 막고 창문 걸쇠를 다시 잠갔다. 술을 마시고 있어 깨닫지 못했는데 몸이 꽤 식어있었다. 라디에이터의 온도를 확인한 후 몸을 돌리는데 문 밖에서 거친 발걸음소리가 점차 가까워졌다. 복도쪽을 쳐다본 순간 문이 거친 소리를 내며 열렸다. 흰 입김을 뿜으며 아직도 숨이 가라앉지 않은 커크가 문을 박차고 뛰어들어왔다.
커크와 눈이 마주치자 맥코이는 재빠르게 시선을 피했다. "늦었네. 난 잔다. 잘...." 그리고 방을 세걸음에 가로지르듯 뛰어들어온 커크가 대뜸 입술을 들이댔다. 숨은 뜨겁고 입술은 차가웠다. 맥코이는 놀라서 피하지 못했다. 입 안으로 차게 언 혀가 들어왔을땐 찬 입술이 맞닿았을때보다 훨씬 놀랐다. 맥코이는 너무 놀라 엉겁결에 커크의 혀를 깨물었다. 혀를 차는 소리와 함께 커크가 몸을 젖혀 떨어져나갔다. 발음이 불분명한 욕설 몇 마디가 들렸다. 씹. -씨발. 맥코이가 얼떨떨한 정신을 추스르기도 전에 눈앞에 별이 튀었다. 뒤이어 쿵, 하고 뭔가 무거운 것이 떨어지는듯한 소리가 들렸다.
"....?"
충격이 통증보다 먼저 찾아왔다. 맥코이는 눈을 세번 넘게 깜빡이고나서야 자기가 바닥에 나자빠져있다는걸 깨달았다. 방금 전 들은 큰 소리는 맥코이 자신이 마룻바닥에 넘어지며 부딪친 소리였다. 손을 들어 마비된 듯 감각이 없는 얼굴 가운데에 댔다가 떼자 그제서야 겨자를 한수저 퍼먹은듯 찡하고 매운 통증이 얼굴 전체로 천천히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손바닥에 벌겋게 피가 찍혀 나왔다. 황당함에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무슨...."
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숨이 입밖으로 튀어나가며 맥코이는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커크는 바닥에 쓰러진 맥코이에게 발길질을 두세번 더 했다. 맥코이는 정신이 하나도 없어 몸을 둥글게 말고 팔로 얼굴을 가리기에 급급했다. 등, 팔, 다리와 옆구리 할 것 없이 눈앞에 불똥이 튀는듯한 통증이 퍽퍽 터졌다. 한 대 맞을때마다 감은 눈 안쪽에서 오렌지색 번개가 번쩍였다.
술에 취해 둔했던 감각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통증이 점차 심해졌다. 술기운이 가시고 제정신이 들자 맥코이는 맞는 와중에 손을 뻗어 커크의 발목을 잡아채려 했다. 맥코이가 손을 뻗는걸 본 커크는 망설임 없이 그 손목을 밟아 비틀었다. 으득, 하고 마룻바닥에 뼈가 갈리는 소리가 나며 맥코이에게서 비명이 터졌다. 날이 새면 신발 밑창 모양으로 시퍼렇게 피멍이 들 터였다. 커크는 몸을 숙여 맥코이의 위에 올라타 얼굴을 가리던 팔을 비틀어 떼어내 바닥에 짓눌렀다. 드러난 맨얼굴은 분노와 아픔과 당황이 범벅되어 사나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커크는 그 얼굴에 주먹을 휘둘렀다. 그런 표정으로 자신을 보지 않았으면 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레너드 맥코이만은. 자유로운 한쪽 팔을 휘저으며 어떻게든 방어해보려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맥코이의 얼굴은 피투성이가 됐다. 코피가 터지고 입술이 찢어지고 광대뼈 위쪽으로 맞은 상처가 벌겋게 올라왔다. 맥코이는 뒤늦게 몸을 비틀며 반격을 시도했지만 이미 맞을 대로 맞아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는 몸은 커크에게서 빠져나오는 것도 무리였다. 한 마디 말도 없이 주먹질을 해대던 커크는 한참만에 헐떡이며 손을 멈췄다. 바깥기온은 영하였지만 이리저리 피가 튄 얼굴을 하고 있는 커크의 얼굴은 땀범벅이었다. 커크는 숨을 몰아쉬며 주먹질을 하느라 까지고 피투성이가 된 손등으로 얼굴을 문질러 닦았다. 손에 묻어있던 피가 얼굴에 번졌다. 커크의 아래 널브러져있는 맥코이는 반쯤 정신을 잃고 있었다. 가느다랗게 들썩이는 가슴만 아니라면 맞아 죽었다고 해도 믿을만한 몰골이었다. 커크는 일어나면서 맥코이의 멱살을 잡아 몸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침대에 멱살채로 쳐박았다. 커크는 맥코이의 위로 올라타 다급하게 맥코이가 입은 옷을 끌어내렸다. 시체같은 몰골이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커크는 방에 들어왔을때부터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해 몹시 기분이 나쁜 상태였고 맥코이를 두들겨 패면서 흥분감은 가라앉긴 커녕 더 심해졌다. 상대가 뭐가 됐든 빨리 쑤셔넣고 흔들고 싸고 싶었다. 커크는 둘이 붙어먹던 시절 핸드로션을 넣어두던 협탁 서랍을 더듬거리며 다급히 뒤졌다. 예전에 쓰던 튜브가 굴러다니다 커크의 손에 잡혔다. 피와 땀으로 젖은 손이 미끄러워 튜브의 뚜껑이 쉽게 열리지 않았다. 짜증과 불안감이 폭발하듯 치솟았다.
"......."
맥코이가 뒤늦게 정신을 차린듯 약하게 버둥거리며 커크를 밀쳤다. 커크는 다급한 마음에 곧장 맥코이의 뺨을 때렸다. 고개가 팩 돌아가면서 움직임이 멎었다. 커크는 간신히 연 튜브의 내용물을 손에 쭉 짜고 튜브는 아무데로나 집어던졌다. 둔탁한 소리가 났다. 다리 사이에 자리를 잡고 로션으로 젖어 미끌대는 손가락을 밀어넣자 아래 뻗어있던 몸이 파득 튀어올랐다. 힘없는 팔이 어깨를 뒤로 밀었다. 커크는 양 손목을 움켜잡아 짓누르면서 체중을 실어 덜 열린 몸으로 성기를 밀어넣었다. "...!!" 맥코이가 짧게 비명을 지르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목에 잔뜩 핏대가 올라 벌겋게 물들었다. 연결된 곳에서 격렬한 거부가 느껴졌다. 커크는 힘으로 밀어붙여 강제로 끝까지 삽입했다. 아래서 찢어지는 소리가 났지만 멈출 마음이 들지 않았다. 커크는 위에서 내리박듯 맥코이의 양 손목을 찍어누른 채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빠듯하게 조이는 쾌감에 커크는 이를 악물었다. 턱에 핏대가 섰다. 존나 좋았다. 욕이 나올 만큼.
***
삐삐삐삐
삐삐삐삐
알람소리에 맥코이는 눈을 떴다. 양쪽눈 다 퉁퉁 부어있어 제대로 앞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기에 눈을 떴다는 말은 부정확한 말이었지만 아무튼 맥코이는 의식을 차렸다. 꿈의 경계 언저리를 맴돌던 통증은 맥코이가 눈을 뜬 걸 알자 들개떼처럼 달려들어 온몸에 이를 박고 매달렸다. 맥코이는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앓는 소리가 흘러나오는 전신의 통증에 인상을 썼다. 온몸이 다 아파 어디가 아프다고 꼬집어 말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삐삐삐삐
삐삐삐삐
알람시계가 계속해서 울었다. 맥코이는 알람시계를 끄고 싶었지만 손끝 하나 까닥일 수가 없었다. 허리 아래는 누군가 훔쳐간것마냥 감각이 없었다. 맥코이는 입술을 깨물면서 눈을 감았다. 지나치게 건강한 그의 정신은 이정도 사고에는 자기방어기제를 올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어제의 일 중 무엇 하나 기억나지 않는 일이 없었다. 맥코이가 생각에 잠겨있는 사이 등 뒤에 누워있던 상대가 부스럭대며 머리를 들었다. 맥코이는 황급히 숨을 죽이며 몸을 웅크렸다. 눈을 감고 가만히 있자 등 뒤에서 헛숨을 집어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ㅡ말도 안돼. 거짓말. 아, 씨발. 내가 지금 무슨 짓을. 젠장. 말도 안 돼. 맥코이는 왠지 맥이 탁 풀리는 기분이었다. 커크가 화닥닥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다 바깥으로 굴러 떨어진 듯 요란한 소리를 냈다. 부스럭거리며 옷을 주워입는 인기척이 났다. 맥코이는 숨을 가라앉히려고 애쓰며 눈을 감았다. 아마 뭔가 화나는 일이 있었던 거겠지. 화풀이할 데를 찾다가 날 본 거고. 맥코이는 커크가 나가면 일어나야겠다고 생각하며 등 뒤의 인기척이 문을 열고 나가기를 기다렸다.
***
맞은편에서 맥코이를 발견한 여자의 눈이 동그래졌다. 입을 벌리면서 뭔가 말할듯한 표정에 맥코이는 한숨을 쉬면서 오늘 다섯번 했던 말을 여섯번째로 반복했다.
"괜찮냐고 물어볼거지? 괜찮아. 왜 그랬냐면 술집에서 시비가 붙어서 세놈하고 치고받았는데 좀 맞았고, 마지막으로 신경쓰지 마. 별 일 아니니까."
차라리 테이프에 녹음을 해서 누가 물어볼때마다 재생해주는게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며 맥코이는 어설프게 웃었다. 붕대며 반창고가 덕지덕지 붙어서도 가리지 못한 상처가 당겨 웃는 얼굴이 바로 일그러졌다. 맥코이는 간신히 표정관리를 하면서 모자의 챙을 더 잡아당겨 얼굴을 가렸다. 눈이 마주치면 다들 짠 것처럼 눈이 동그래져서 손으로 입을 가리며 손가락질을 해오곤 했다. 맥코이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맞은만큼 패놓을걸. 아무리 생각해도 후회되는 일이었다.
***
바로 방을 나갈거라는 예상과 달리 옷을 다 주워입은 커크는 침대가 보이는 자리에 의자를 갖다놓고 앉아 등받이를 끌어안은채 우두커니 침묵을 지켰다. 굳이 눈을 떠 확인하지 않아도 커크의 시선이 자신에게 못박혀있다는걸 느낄 수 있었다. 무슨 생각인지 알고 싶고, 또 알고 싶지 않았다. 맥코이가 기대한 커크의 행동과는 너무 달랐다. 빗나간 예상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도, 설마 하는 기대를 하고 싶지도 않았다. 맥코이는 눈을 감고 커크가 지금이라도 방을 뛰쳐나가길 바랬다. 맥코이와 커크 사이의 공간에 침묵이 바윗덩이처럼 쌓여 무겁고 단단하게 뭉쳤다. 맥코이는 숨이 막힌다고 생각했다. 커크가 나가야 숨통이 트일 것 같았다. 하지만 기대가 배신당하는 게 삶의 법칙이듯 커크는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그 자리를 지켰다. 자명종이 울려 그들 사이의 침묵이 깨질 때까지 계속.
그 한시간은 단언컨대 레너드 맥코이의 인생에서 가장 긴 시간이었다. 조슬린과 이혼서류를 들고 가정법원의 대기실에 앉아있던 한시간도 그보다 길지는 않았다.
맥코이는 눈을 감고 커크가 방에서 나가주길 기다리며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처음 커크를 만났던 날 커크가 입었던 옷. 날씨와 기온. 둘이 나란히 앉았던 의자 시트의 촉감, 냄새와 소리들이 놀랄 만큼 기억이 생생했다....
...아니, 전부 거짓말이다. 맥코이의 기억에 커크를 처음 만나던 순간의 배경같은 건 남아있지 않았다. 커크가 너무나도 강렬했던 탓이었다. 그 눈, 표정, 목소리, 말투와 미소. 말할 때 입술이 움직이는 습관같은 모양새는 너무나도 생생했으나 그날 커크가 입었던 옷, 주변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는지 따위는 하나도 기억에 남아있지 않았다. 메모리의 포커스는 전부 커크를 향해 있었고, 뷰파인더의 초점이 향해 있는 커크 이외의 배경은 기억에 물을 탄 듯 흐렸다. 맥코이는 수치를 느꼈다. 커크는 입버릇처럼 "본즈, 넌 내가 알았던 놈들 중 최고야." 라고 말했지만 레너드 맥코이는 단 한번도 제임스 커크의 친구였던 적이 없었다. 그래서 아마 같은 방을 쓰게 된지 얼마 지나지 않았던 어느날 밤에 술에 취한채로 침대에 기어들어와 바지 속으로 파고들던 손을 뿌리치지 못했던 것이다.
맥코이는 정상적인 감성과 양심을 가진 평범한 남자였고 커크의 애인들과 함께 어울리며 늘 죄책감을 느꼈다. 맑게 웃으며 커크의 얼굴을 쳐다보는 그 무수한 얼굴들을 보며 무슨 수로 미안함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하지만 감정을 이기지도 못했다. 맥코이는 너무 외로웠고 커크는 너무 반짝거렸다. 자각한 마음은 속수무책으로 달려나갔다. 깊은 우물 속에서 따끔대는 죄책감, 미안함, 양심의 가책같은 감정들에 뚜껑을 눌러덮고 모른척할 수 있을 만큼.
그래서 맥코이는, 자기가 커크의 친구가 되지 못했던 것에 미안함을 느낀다면 바로 지금 이 순간에 그의 친구가 되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침대 옆 테이블 위에서 자명종이 울기 시작했다. 맥코이는 눈을 떴다. 침대 옆에서 작게 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났다. 맥코이는 침대 시트에 손을 짚고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눈앞이 빙빙 돌고 온몸이 삐그덕거리며 비명을 질렀다. 고개를 드는데 콧잔등에서 찡, 하고 뼈가 울리는 느낌이 나더니 눈앞이 시커매지면서 코피가 흘러 시트에 툭 떨어졌다. 저절로 앓는 소리가 났다. "아야야...." 커크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본즈." 맥코이는 커크쪽을 돌아보지도 않은 채 손을 내저었다. "괜찮아. 거기 휴지나 줘." 커크가 허둥지둥대며 휴지 두루마리를 찾아 헤매는 꼴을 보다가 본즈는 시트를 들어 코를 막았다. 잠깐 사이에 적잖은 피가 흘러 시트를 검붉게 물들였다. 맥코이는 별 상관 없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더럽혀진 시트였다. 한 방울이나 1리터나 한번 피가 묻으면 세탁을 해야 하는건 마찬가지다. 맥코이는 시트 구석에 코피와 손에 묻은 피까지 문질러 닦았다. 아프고 쓰라려 건드릴 엄두가 안 나는 코를 조심스럽게 만져 뼈가 부러지지 않은걸 확인하고 맥코이는 끙 소리를 내며 침대 바닥에 발을 디뎠다. 마룻바닥의 냉기가 발바닥에 와 닿았다.
커크가 맥코이의 앞에 와 섰다. 맥코이는 굳이 고개를 들어 커크의 얼굴을 보는 수고는 하지 않았다. 커크는 빈손이었다. 휴지 하나 못 찾아오는 한심한 녀석. 내가 아니면 누가 널.... 까지 생각하다 맥코이는 생각을 끊었다. 쓸데없는 생각이었다. 맥코이는 짧게 숨을 들이마시고 입을 열었다.
"아직도 안 가고 뭐 했냐. 너 1교시 수업 시작했을 시간인데."
1분이 영원처럼 흘러갔다. 커크는 대답하지 않았다. 맥코이는 한숨을 푹 쉬면서 삐걱거리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시트를 집어 대충 허리에 두르고 맥코이는 바닥에 떨어져있는 바지를 향해 백년동안 걷기 시작했다. 커크에게 주워달라고 했으면 간단했을 테지만 굳이 지난밤을 상기시킬만한 물건을 커크에게 언급하고 싶지 않았다. 그 자리에 붙박힌 듯 서 있는 커크를 지나 이백년을 걸어 바지를 줍고, 다시 백오십년을 걸어 티셔츠를 주웠다. 맥코이는 한쪽 다리를 들어 바지를 다리에 꿰기 전에 자기가 중심을 제대로 잡을 수 있는 상태인지 확인해야 했다. 양발로 체중을 번갈아 실으면서 아프고 힘이 잘 안 들어가긴 하지만 죽을 정도는 아니라는 자가진단을 마치고 맥코이는 끙끙대며 힘겹게 바지를 입었다. 티셔츠를 머리에 꿰는데 거친 힘이 몸을 붙들어 돌려세웠다. 눈앞에 별이 번쩍 튀었다. "윽!" 맥코이는 왈칵 짜증을 내며 커크의 팔을 뿌리쳤다. "Damn it, 커크! 뭐 하는거야!"
"본즈, 너야말로...."
커크는 채 말을 잇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맥코이의 양 어깨를 움켜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맥코이는 커크의 얼굴을 보고 뭐라고 더 쏘아붙이려다 관뒀다. 커크의 표정은 말로 설명할 수 없었다. 커크가 있는 힘껏 잡고있는 어깨가 아팠지만 손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이렇게나 사납게 움켜쥔 주제에 얼굴은 울 것 같기도 하고 화가 난 것 같기도 한 표정을 짓고 있어 그 갭에 한숨이 나올 지경이었다. 문제는 이렇게나 엉망진창인 표정도 여전히 눈을 떼기 어려울 정도로 반짝거려 보인다는 사실이다. 맥코이는 자신이 커크에게 약하다는 것을 마지못해 다시 인정했다. 맥코이는 목을 가다듬으며 조금 부드러운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했다. "커크, 놔. 수업 가야돼."
갈고리처럼 어깨를 움켜쥐고 있던 손이 힘없이 아래로 떨어졌다. 맥코이는 눈살을 찌푸렸다. 붙잡혔던 자리가 찌르르 아픈 게 멍이 들 것 같았다. 샤워를 하고 싶었지만 이 시간에 공동샤워장은 꽤 붐빌거고 맥코이는 조슬린과 다시 결혼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강간 피해자라는걸 온 몸으로 광고하는 몰골로는 샤워장에 들어갈 생각이 없었다. 맥코이는 한숨을 푹푹 쉬며 커크를 지나쳐 옷을 몇 벌 끄집어내 되는대로 껴입었다. 대충 따듯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옷을 껴입은 맥코이가 뒤를 돌아보자 여전히 커크가 같은 자리에 서 있었다. 커크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보였다. 맥코이는 커크의 얼굴을 힐끔 보고 옷장에서 야상을 꺼내 걸쳤다. 바닥에 굴러다니던 백팩을 집어 어깨에 메고 신발에 발을 꿰면서 맥코이는 입을 열었다. "수업 안 갈거냐? 대출해줘?" 커크는 대답하지 않았다. 맥코이는 문을 열고 복도로 나섰다. 문이 닫히기 직전에 커크의 목소리가 들렸다. "...씨발." 맥코이는 문을 닫았다. 닫힌 문 뒤로 뭔가가 부딪쳐 산산조각나는 소음이 났지만 맥코이는 듣지 못한 척 절뚝절뚝 복도를 걸어 기숙사를 벗어났다.
***
그날 저녁 맥코이가 기숙사방에 돌아왔을 때 커크는 예상을 깨고 방에 있었다. 방은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었고 간밤의 어떤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맥코이와 눈이 마주치자 커크는 기분 좋게 웃으며 옆에 놓여있던 맥주 캔을 집어들어 던졌고 맥코이가 그걸 받아 따다가 거품이 흘러넘쳐 질겁하자 그 얼굴을 손가락질하며 낄낄댔다. 맥코이는 화를 내려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고 흘러넘치는 맥주캔에 입술을 댔다. 커크가 취한듯한 움직임으로 옆에 와 앉으라고 손짓했다. 맥코이는 맥주를 한모금 마시면서 가방을 내려놓고 커크의 옆에 가 앉았다. 따지 않은 6개들이 맥주팩이 바닥에 놓여있었다. 이미 빈 캔도 대여섯개 굴러다니고 있었다. 흐느적대는 꼴이 제법 마신 것 같았다.
"무슨 술을 이렇게 마셨냐."
"몸은 좀 어때?"
맥코이는 잠시 멈칫했다가 커크의 이마를 검지손가락으로 툭 밀었다. "어떻긴. 별로 안 좋지. 이유도 없이 사람을 그렇게 패놓고 이제서야 괜찮냐고 물어보냐? 너도 니가 팬 만큼 맞아볼래?" 커크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가셨다. 방금 전까지 취해 흐느적거리던 사람답지 않게 파란 눈이 또렷해져 맥코이를 노려봤다. 맥코이는 덤덤한 표정으로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맞받았다. "뭐. 왜. 그럼 내가 니놈 속 편하라고 존나 괜찮다고 해줄 줄 알았냐?" 맥코이는 들고있던 맥주캔을 전부 비운 후 내려놓고 새 캔을 땄다. "앞으로 한달동안 내 술값은 니가 내." 커크가 피식 웃었다. 맥코이는 커크의 웃음이 그닥 고운 뉘앙스만은 아님을 피부로 감지했지만 눈치채지 못한 척 맥주캔을 기울였다. 커크가 킬킬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 존나 대단한 새끼야. 씨발." 맥코이는 대답 대신 맥주를 마셨다. 커크는 비칠대며 침대로 가서 쓰러졌다. "...존나 고마운데, 존나 기분 더럽네. 씨이발...." 시트에 뭉개진 발음은 불분명했다. 맥코이는 이번에도 못 들은척 했다. 바닥에 놓여있던 6개들이 팩을 집어들어 하나씩 비워나갔다. 마지막 캔이 반 정도 비었을 즈음 커크의 침대에서는 쌔근쌔근 규칙적인 숨소리만 들려왔다. 맥코이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허리며 다리며 안 쑤시는 곳이 없어 저절로 끙 소리가 흘러나왔다. 바닥의 빈 캔들을 정리하고 옷을 갈아입은 뒤 맥코이는 커크의 침대를 돌아보았다. 엎드린 채 잠든 뺨이 하얬다. 맥코이는 훅, 짧은 한숨을 내쉬고 커크의 침대가로 다가섰다. 맥코이는 커크의 얼굴을 잠시 내려다보다가 등 위로 이불을 끌어올려 덮어준 뒤 불을 껐다.
***
12월도 중반이었다. 날씨는 믿을 수 없을만큼 추워졌다. 교정을 걸어다니는 학생들을 보기 어려웠다. 학생들 대부분은 기숙사나 학교 근처의 술집, 중앙난방이 빵빵한 도서관에 모여들었다. 교정은 눈으로 덮여 동물들이 겨울잠에 든 숲같이 휑했다. 날이 춥고 야외활동이 뜸해져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지내게 되자 물 밑에서 오가는 가십들은 더더욱 활발해졌다. 맥코이는 그 가십들 사이에 자기 이름이 빠질 날이 없는 걸 유감스럽게 생각했다. 이건 다 저 빌어먹을 커크놈 때문이었다. 맥코이는 포크를 들어 샐러드 접시를 신경질적으로 몇 번 찍다가 내려놓았다. 아무리 한겨울이어도 그렇지 이 샐러드에 들어간 양상추를 채소로 인정하는건 인류의 농경사회에 대한 모욕이었다. 맥코이는 샐러드접시를 저만치 밀어놓고 떨떠름하게 입을 열었다.
"징그러운 니들 커플 사이에 나 끼워다니는 짓좀 그만 하면 안될까, 커크."
맞은편에 앉아있던 커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커크의 무릎에 앉아있던 레이첼이 동의한다는 듯 살짝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맥코이를 쳐다보다가 커크에게 고개를 돌렸다. 도대체 무슨 소린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가증스러운 파란 눈에 넌덜머리가 났다. 맥코이는 건성건성 손을 휘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무지 못 먹겠다. 나 먼저 갈테니 제발 니들끼리 알아서 점심 먹고 지지고 볶고 해라. 나 찾지 말고, 쫓아다니지도 마. 때되면 알아서 기숙사에 기어들어갈테니 전화도 하지 말고 특히 니네 같이 있는 술집으로 불러내지 마라. 간다."
커크가 뭔가 말하려는듯 몸을 일으켰지만 무릎에 앉아있는 레이첼 덕에 채 일어나지 못하고 도로 주저앉는 틈을 타 맥코이는 잽싸게 빈 식판을 집어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등 뒤에서 속닥거리는 소리에 자신의 이름이 섞여 들리자 두통이 이는듯한 착각이 들었다.
맥코이의 뒷모습이 식당 입구를 지나쳐 사라지자 커크는 인상을 구겼다. 레이첼이 몇 마디를 했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레이첼이 짜증을 내자 커크는 그때서야 정신을 차리고 표정을 바꾸며 되물었다. "못 들었어. 미안. 뭐라고?" 레이첼이 커크의 무릎에서 벌떡 일어서서 옆에 내려뒀던 가방을 집어들었다. "리체...." 커크가 손을 뻗자 레이첼이 날카롭게 그 손을 쳐냈다. 손등에 긴 손톱이 긁고 지나간 상흔이 남았다. 커크가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순식간에 표정에 날이 섰다.
레이첼은 커크의 기색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가방을 어깨에 걸며 몸을 돌렸다. "갈래. 나중에 연락해." 레이첼은 그대로 굽소리를 내며 커크에게서 멀어졌다. 커크는 무표정한 얼굴로 레이첼의 뒷모습을 쳐다보다가 왼손으로 상처를 누르며 빙긋 웃었다. "그래, 그럼." 커크는 이미 듣는사람이 가버린 허공에 대답하고 다시 한번 손등을 내려다보며 상처를 덮었던 손을 뗐다. 뜨끔하는 쓰라림이 올라왔다. 커크는 주머니에 양 손을 찔러넣고 주변을 훑었다. 구경꾼들 중 하나가 커크와 눈이 마주쳤다. 커크는 씩 웃었다. 평소같은 느낌이 아니라 날카롭게 날선 느낌에 커크와 눈이 마주친 사람은 저도 모르게 움찔 반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구경 났어? 끝났으니 이제 그만 봐. 돈 받을 거야."
장난스럽게 손을 모아 외치는 목소리에 구경하던 여학생 몇이 웃으며 귓속말을 주고받았다. 사람들이 흩어졌다. 가방을 반대편 손에 쥐고 커크는 평소같이 느긋한 걸음으로 식당을 벗어났다.
***
"여기. 이쪽- 본즈으-"
술집 안을 둘러보던 맥코이는 한쪽 구석에서 이미 반쯤 맛이 간 얼굴로 웃으며 손을 흔드는 커크를 발견했다. 맥코이는 뒷골이 당기는걸 참으며 가방을 고쳐메고 술집 안쪽으로 들어섰다. 커크는 이미 테이블에 반쯤 엎드려 있었다.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맥코이는 옆의 의자를 빼 주저앉았다.
"오늘은 또 왜 그런거야." 늦은 저녁의 술집 안은 담배연기가 뿌옇게 들어차 있었다. 코를 찌르는 냄새에 담배 생각이 들었다. 맥코이는 건성으로 질문하며 테이블 위에 팔꿈치를 괴고 몸을 기울였다. 커크가 레이첼과 싸웠다고 징징대며 불러내는 일은 너무 잦아서 이제 새삼스럽게 별 감흥도 없었다. 푸념 들어주고, 몇 마디 대충 지껄여주고, 술이 모자란 것 같으면 더 먹여서 기절시킨 후에 끌고 가리라. 맥코이는 머릿속으로 앞으로 아깝게 버려야 할 두 시간여의 계획을 정리하며 별 생각 없이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담뱃갑을 툭 털어 끄트머리가 비져나온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 라이터를 찾아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라이터. 아까 이쪽에 넣었는데.... 라이터를 찾으려고 셔츠 앞쪽 주머니와 바지주머니에 번갈아가며 손을 넣어 더듬거리는데 옆에서 손이 대뜸 뻗어와 맥코이의 입에 물려있던 담배를 잡아뺐다. 얼떨결에 담배를 뺏긴 맥코이가 담배를 뺏은 손을 따라 시선을 돌리자 그 손이 담배 중간을 찢어 부러트리는게 보였다. 맥코이는 같은 흡연자라면 절대 하지 않을 행패에 저도 모르게 꽥 소리를 질렀다. "뭐 하는 거야!" 커크의 손을 따라가 시선이 닿은 얼굴은 방금까지 취해있던 사람답지 않게 딱딱했다. 커크가 담배를 콱 쥐어 구겼다가 테이블 아래로 떨어트렸다. 산산조각이 난 담배에서 가루가 떨어져 술집 바닥에 지저분하게 흩어졌다. 맥코이는 기가 차 헛숨을 내뱉었다. 커크가 대뜸 일어나 맥코이에게 달라붙어 자켓 주머니를 뒤지다가 떨어져나갔다. 얼떨결에 봉변을 당한 맥코이는 짜증을 냈다. "커크!!" 커크가 맥코이의 주머니에서 꺼낸 담뱃갑을 바닥에 떨어트리곤 발로 밟았다. 한 갑이 순식간에 뭉개졌다. 본즈가 황당함에 뭐라 항변하기도 전에 커크가 입을 열었다. "본즈. 언제부터 담배 피웠어?"
맥코이는 뜨끔하는 기분에 인상을 썼다. 2년여의 금연이 끝난 건 커크가 레이첼과 만나기 시작한 날이었다.
"언제부터 피웠으면."
"너 담배 끊었잖아."
"끊었었지. 살다보면 다시 필 수도 있는 거고."
본즈는 바닥에 떨어진 담뱃갑을 집어들어 속을 살피고는 인상을 찡그렸다. 가볍게 밟은 것 같더니 완전 짓이겨놔서 성한 담배가 한 개비도 없었다. Damn it, 커크놈. 맥코이는 넌덜머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커크가 손을 뻗어 맥코이의 소매를 잡았다. "어딜 가." 맥코이는 커크의 손을 잡아 소매에서 떨쳐냈다. "담배 사러. 이거 좀 놔...." 맥코이는 말 끝을 흐렸다. 커크의 손등에 난 보기에도 아파보이는 긴 붉은 상처가 눈에 띄었다. 맥코이는 한숨을 쉬며 도로 앉아 가방을 끌어당겼다. 소독약과 밴드, 연고정도는 가방에 늘 들어있었다.
"이건 뭐야. 또 레이첼이 그랬어?" 맥코이는 가방에서 꺼낸 소독약을 커크의 손등에 부으며 물었다. 커크가 따갑다고 질색팔색을 하며 엄살을 떨었다. 그래도 습관이 된 모양인지 손을 빼내지는 않는게 그나마 기특해 연고는 조금 살살 발라주었다. 커크가 대답했다. "뭐, 좀 할퀴었지. 사랑싸움. 너도 알잖아. 레이첼은 앙칼진게 매력인 거." 싸운 것 치곤 어째 발랄한 어조였다. 하여튼 술이 문제라니까. 맥코이는 밴드를 꺼내 커크의 손등에 붙이며 냉담하게 대꾸했다. "이거 흉질텐데. 매번 나한테 니 치닥거리 시킬 생각 말고 앞으론 뭐라도 사서 좀 붙여. 그리고 걔한테 앞으로는 손톱자국 낼 거면 등에나 좀 내달라고 해. 어차피 긁어놓을거면 그편이 낫지." 소독약과 밴드를 주섬주섬 챙겨 가방에 집어넣던 맥코이는 옆얼굴이 뚫어져라 쳐다보는 시선에 인상을 쓰며 고개를 돌렸다.
"왜."
커크는 어쩐지 심기가 불편한 얼굴이었다. 잠시 꾸물거리며 입술을 달싹이다가 커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술집 밖으로 나가버렸다. 맥코이는 당황해 자리에서 일어나 커크를 따라나갔다. "야, 커크! 커크!!!"
밖은 깜깜했다. 다급히 뛰어나온 맥코이는 양손을 주머니에 찔러넣은 채 서있는 뒷모습을 보고 안도했다. 다가가 어깨를 툭 쳤다. 커크는 돌아보지 않았다. 맥코이는 커크의 옆에 섰다.
"취했냐? 갑자기 왜 그래."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 표정을 알 수 없는 얼굴에서 한참만에 대답이 흘러나왔다.
"넌 어떻게 그렇게...."
뭔가 말하려던 커크는 고개를 저으며 입을 다물었다. 맥코이가 손을 뻗어 어깨를 잡자 커크는 조금 과하다싶을정도로 단호하게 맥코이의 손을 떨쳐냈다. 맥코이는 순순히 손을 떼고 물러섰다. 커크가 몇발짝 앞으로 걷다가 빙글 돌아섰다. 정면으로 시선이 마주쳤다. 웃는 얼굴이었지만 눈이 전혀 웃고 있지 않은 서늘한 표정이었다.
"이상하게 말야."
흰 입김이 커크의 얼굴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술집 앞 가로등의 희미한 불빛이 커크의 머리카락과 입김에 반사되어 오렌지색으로 빛났다. 맥코이는 눈살을 찌푸렸다. 커크는 불안하고 혼란스럽고 약해보였다. 동시에 날카롭고 난폭해보이기도 했다. 종잡을 수 없는게 원래 커크의 특징이었지만 이건 맥코이가 알던 것과는 또 다른 커크였다. 커크는 마치 자신의 혼란을 스스로 컨트롤할 수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화를 내다가 왜 화가 났는지 잊은 어린아이처럼.
"난 니가 이럴때마다 존나 화가 나는데 왜 화가 나는지를 모르겠어."
심장이 덜컹 소리를 내며 가라앉았다. 맥코이는 가까스로 표정을 굳힐 수 있었다. 매 번, 매 순간과 매 초에 이제는 괜찮을 거라고 믿은 마음을 커크는 너무 쉽게 무너트리고 허물었다. 저건 별 뜻 없는 말이다. 종잡을 수 없는 제임스 커크가 매번 그러듯 이번에도 술에 취해 늘어놓는 억지 헛소리에 불과하다. 수십 번을 되뇌인 끝에야 맥코이는 입을 열 수 있었다. 그러고도 무슨 말을 해야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 맥코이는 물 밖으로 나온 붕어처럼 우스꽝스럽게 몇 번이고 입을 열었다 닫았다가 한참만에 겨우 한 마디를 꺼냈다. "내가 레이첼 얘기 한 것 때문에 그래? 난 걔가 나쁜 애라고 말하는 게 아냐. 그냥 농담...." 맥코이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커크가 허리를 꺾으며 폭발적인 웃음을 터트렸다. 허리를 꺾어가며 웃는 커크에게 말을 붙일 수가 없어 맥코이는 그저 커크가 웃음을 그치기를 기다리며 입을 다문 채 그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커크가 눈물을 닦으며 웃음을 그쳤다.
"존나 질리는 새끼."
그리고 맥코이에게 등을 돌렸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쫓아가야 할지 아니면 서 있는게 맞을지 마음을 정할 수가 없었다. 맥코이는 커크가 약간 비틀대는 걸음걸이로 시야에서 사라질때까지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 커크가 사라진 후에야 맥코이는 홀린 듯이 걸음을 뗐다. 너무 오래 추운 곳에 서 있었던 탓에 다리가 얼어 감각이 없었다. 유령이라도 된 듯 넋을 빼고 걷다 정신을 차리자 기숙사 방문 앞에 서 있었다. 커크는 방에 없었다. 맥코이는 방 안으로 들어섰다.
기계적으로 손을 움직여 옷을 갈아입고 침대 속으로 파고드는 동안 계속 한 가지 생각만 맴돌았다. 맥코이는 두통이 관자놀이와 두개골 안쪽을 치받는걸 느꼈다. 미열이 돌았다. 아스피린 생각이 났지만 약장까지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번번히 같은 생각에 사로잡혀 빠져나오지 못하는 스스로가 혐오스럽게 느껴졌다. 맥코이는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얕은 잠과 악몽이 새벽 내내 반복되며 이어졌다.
***
둘다 무려 2013년에 썼네요...ㅋㅋㅋㅋㅋㅋㅋㅋ 커크본즈 폴더는 진짜 많은데 나머지는 거의다 썰이라 백업할건 이정도만.
스타트렉 비욘드가 제발 대박나서 내 주식도 대박나길 ㅠㅠㅠㅠ 커크본즈 제발 ㅠㅠㅠㅠ
- Total
- Today
- Yesterday
- ViLLAiN
- stevehawk
- tonybarton
- Thor
- Steve
- 커크본즈
- lady thor
- 쟤만
- 킹스맨
- 아니난빼고
- thorki
- 그 원고가 말이지
- Avengers
- 아스가디언 짱나
- 에그시해리
- rabromance
- Hartwin
- 짐본즈
- clint
- 해리 하트
- mckirk
- OO7
- Hawkeye
- Loki
- thoki
- kingsman
- vesper
- 원고가
- Skyfall
- Tony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